최장집교수와 인터뷰내용

“정치체제 근본적 변혁 시작됐다'

노무현 정부 열린우리당 개혁드라이브 회의적
민주노동당, 확고한 정체성에 정책 보태져야


'축하합니다.' 최장집 교수의 인터뷰는 반가운 인사말로 시작되었다. 조현연( 편집위원) 먼저 소프트한 질문부터 드리겠습니다. 진보정치가 청한 여러 차례 인터뷰 요청에도 만류하시다가 이렇게 흔쾌히 승낙하게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최장집(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 개인적으로 조박사를 좋아하니까 그렇죠. (웃음) 크게 보면 한국 민주주의에서 노동자 서민 대중의 이익이 정당을 통해서 대변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한 결함이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노동이 대표되는 체계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민주노동당이 그런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조- 민주노동당은 10석을 얻어 제3당으로 부상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여러 차례 지적하신 바와 같이 한국의 민주주의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였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성공적인 원내진입으로 이제 '노동 있는 민주주의'로 가는 계기로 바라봐도 되는 건가요.

최- 그렇습니다. 한국은 경제발전 수준, 사회발전 정도가 OECD 가맹국이며, 세계 경제에서 GNP 총량에 있어서도 10번째에 이를 정도로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치적 기구가 없다는 사실은 중대한 결함을 말합니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는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과 함께 노동이 없이도 민주주의가 가능하느냐의 물음이 내재돼 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이렇게 많은 지지를 받아 원내 10석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을 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놀라운 결과입니다. 탄핵정국 이전에 한 두 개 지역구에서 진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으로 조직노동자가 정당의 형태로 대변될 수 있겠다는 정도로만 예측했었는데, 처음 시도에서 이 정도로 대규모적으로 폭발적, 비약적일 나타날 것이라는 것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탄핵문제와 연결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민주화는 17대 총선에서 시작

조-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점유했고, 민주당과 자민련이 몰락하고, 개헌저지선을 확보하긴 했지만 한나라당이 이전보다 원내 의석수가 줄어들었으며,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얻었습니다. 17대 총선에서의 총괄적인 평가를 먼저 해 주신다면.

최- 17대 총선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금까지의 한국 민주주의의 특성을 이해하고, 앞으로 한국 정당체제에 전개될 전망을 포괄한다고 봅니다.

우선 여당이 다수당이 된 것은 민주화 이후 최초의 현상인데, 이는 야당이 소수당 됐다는 것입니다. 민주화 이후 전국적인 선거에서, 대통령 선거는 그 정당이 지지하는 상대적으로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후보가 당선돼 왔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에서도 입증되듯이 대통령 선거에서는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사람이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러나 1인1표제를 중심으로 한 소선거구 경쟁인 총선에서는 보수적인 정당이 다수당이 되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민주세력과 보수세력의 절반과 절반의 공조가 제도적 수준에서 굉장히 불안정한 구도를 만들어왔고, 이 구조가 대중투표에서 다수를 획득한 대통령의 개혁을 상당히 제한하는 구조였습니다.

여소야대 또는 분할정부 -미국이나 유럽의 대통령제를 가진 나라에 서 흔히 볼 수 있듯이-였던 것이죠. 대통령 중심제에서 대통령이 민의를 대변하는 정책을 추진하기에는 제약이 많았던 것입니다.

이번 총선은 탄핵이 대립선을 분명히 그어냈는데, 열린우리당으로 대표되는 확실한 민주세력이 다수당이 됐다는 사실은 명실공히 집행부와 의회다수세력이 적어도 제도적으로 가장 큰 장애라고 할 수 있는 여소야대가 극복됐다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의미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만들어진 정당체제, 보통 서술적으로 말하는 지역당 구조가 이 선거를 통해 완전하게 해체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해체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새로운 정당체제를 향한 변화의 전환점에 서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세 번째 중요한 의미가 민주노동당의 등장입니다. 지역당 구조의 해체 없이 민주노동당의 진출이 비약적 발전을 가져오기 어렵습니다. 13%라는 지지율을 갖는다는 것은 이미 기존의 지역당 구조의 해체를 부분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죠.

이것은 제가 앞에서 이야기했던 요소보다 더 중요합니다. 해방이후부터 정당구조는 한마디로 얘기해서 냉전반공주의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협애한 구조로 조직되고 대표되어 왔습니다. 민주화 이후에는 지역당 구조였지만, 그것은 형태적인 변화에 불과한 것이고, 내용적으로는 냉전반공이라고 하는 보수독점의 정당체제였는데, 정치적인 중도파조차도 정당으로 조직되고 대표될 수 없는 지형이었습니다.

민주노동당이 좌파라는 이름으로 의석 10석을 가졌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정치체제의 근본적인 변화의 시작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화는 이번 17대 총선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치적 공급을 능가한 사회적 수요

조- 선생님께서는 이번 총선이 탄핵에 대한 국민투표적 성격이 있다고 말씀하신 바 있는데, 탄핵역풍에 때문에 열린우리당이 반사이익을 획득한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열린우리당이 자기 정체성을 갖추는 것이 기성정당에게도 중요한 것이라고 봅니다.

최- 우리나라 정당체제의 구조적 특성은 늘 되풀이 얘기해 왔듯이 사회에 기반을 두지 않는 정당체제였습니다. 제도권 정치 엘리트들이 사회의 실제적인 갈등과 균열을 대변하지 못하고, 제도가 기반을 두고 있는 사회로부터 일정한 괴리를 가지면서 대표들이 상당한 자율성을 향유해왔습니다.

책임성이 적은 거죠. 대표의 직접성 정도가 약한 거죠. 선출자와 대표자의 거리가 완벽할 수 없겠지만, 어느 정도 가까움은 유지돼야 하는데 우리는 대표의 직접성이 약하고, 유권자들이 대표에게 책임을 묶는 고리도 약했습니다.

사회는 모든 스펙트럼을 반영해야 하는데, 보수독점의 이념적 스펙트럼만 반영되었기 때문에 사회의 최상층 이익만 과다 대표된 반면, 나머지 이익들은 과소 대표되고 특히 노동자의 이익은 대표되지 않았습니다. 대중과 정당간의 이런 괴리 때문에 정당은 전부를 대변하는 포괄정당적 측면을 가지는 양면의 성격이 있었습니다.



다같이 보수적 성격이라는 점에서는 한나라, 민주, 열린우리당은 구분이 안 되는데, 그러나 이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한 측면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보수, 진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설명가능하냐면 우리 사회의 실제 이익을 어떤 형태로든 반영하고자 하고, 반영한다고 자임하고 있었는데 이를 직접적으로 정리하지 못하고 막연한 상태에서 이 두 개의 구조가 맞물려서 돌아왔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습니다.

사회가 정치의 대표체계에서 요구하는 즉, 나의 요구, 계층의 요구와 같은 수요의 영역을 정당이 대변하지 못했고, 지역당 구조로 공급중심의 -기업이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파는- 정당중심 체제였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구도는 공급과 수요가 매치 되지 않아, 공급구조가 자기 정체성이 약한 상태에 있었는데, 이번 탄핵사태는 애매하고, 몽롱하며 희뿌연한 정당체제를 확 걷어내 민주 대 반민주의 선을 분명히 그은 것이었습니다.

그런 속에서 상대적으로 열린우리당이 젊고, 신선하고, 개방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혁과 변화를 향한 사회의 요구가 일정하게 반영되었습니다. 열린우리당은 여전히 당의 구조와 후보의 면면, 이념적 오리엔테이션이나 당의 전체적인 성격이 정의되지 않아 정체성이 확실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1당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우리 사회가 강력하게 그 영역을 대변해 주기를 바라는 것에 대한 현상이 열린우리당으로 나타났다, 즉 수요가 공급의 역량보다 강하게 압도,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열린우리당이 메워나가야 할 과제죠.

민주노동당도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비슷한 것 같습니다. 13%라는 득표율은 민노당이 잠재적 지지계층에 호소해서 획득한 표라기보다는 전체적인 판이 탄핵으로 급격하게 요동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이 공간이 채워져야겠다, 사회 저변층이나 좌파적인 이익을 대변할 필요성들이 민주노동당에 표가 쏠리게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열린우리당과 약간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동당의 경우에도 정체성은 있지만 이 같은 많은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느냐. 노동자 서민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느냐 하는 점에서는 정책적 대안과 그것을 수행할 인적역량, 프로그램 측면에서 볼 때 민주노동당이 제공해 줄 수 있는 능력보다 나타난 표의 요구가 더 강하다고 봅니다.

탄핵은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공격

조- 탄핵으로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전체판을 휘젓고, 탄핵이 중심적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탄핵심판론-거여부활론 대 거야견제론이 선거전이 벌어졌습니다. 선거라는 것은 이전 국회 4년의 평가와 참여정부 1년을 종합적으로 평가되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보는데요. 선거 자체로만 본다면, 예기치 않는 탄핵정국으로 평가해야 하는 것들이 실종되거나 묻혀진 측면이 있지 않을까요.

최- 보수적인 한나라당 민주당의 연합을 통해서 탄핵가결선을 만들어 탄핵을 한 것은 고전적 의미에서 집행부를 견제한 의미도 있습니다. 지난 대선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쉽과 수행능력을 평가할 때 실망적인 것이 굉장히 많았다고 볼 수 있죠.

노정부의 성립이라는 사실과 수행능력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는 사실, 의회가 보수적인 야당들에 의해 보수적 동맹이 형성될 수 있고, 이것이 말하자면 정부의 지지부진한 수행에 대해서 의회의 법적, 제도적으로 견제가 가능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이 탄핵이라고 하는 결과로 드러난 거죠.

이 과정에서 민주적인 제도의 문제, 결함이 드러난 계기도 됐지만, 어쨌든 대통령이 강한 리더쉽을 발휘하지 못하고, 수행력이 약하고, 장악력이 떨어져 의회에서 소수당의 위치에 있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명료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못했다는 것에 대한 평가도 중요하지만 -의회 밖에서 일반국민의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더 떨어졌으니까-야당이 정부여당을 비판공격한다는 사실과 그것을 탄핵으로 집단 행동으로 구체화시켰다는 사실은 정치적으로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탄핵은 갑자기 그 동안의 이슈를 전치시켜버린 것이죠.

그전에는 여당에 대한 야당의 비판이라는 것이 있는데, 탄핵으로 인해 그것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국민이 1년 전에 선출한 사람이자 민주주의 제도인 대통령제를 공격했다는 것이죠. 1987년에 뛰어들어 쟁취한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공격, 이는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뭐냐하면,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으로 국민들에게 요약되는데, 87년에 투쟁해서 만들어 놓은 대통령제를 수행능력이 떨어져 맘에 안들기도 하지만 이 제도를 무너뜨리려고 한다, 이것을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국민들이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이 일단 이전에 노정부에 대한 지지율 하락과 부정적 평가를 유보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 전면적인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보수파들의 견해와 행동의 양상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중심인 제도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이미지를 상당히 많이 줬고, 그리고 국민이 보기에는 대통령도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정치인들은 그보다 더 말이 안 되는 짓거리를 해왔는데, 이런 사람들이 대통령을 몰아내려고 하니깐 분노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탄핵에 대한 국민투표적 성격을 갖는다고 얘기한 것입니다. 선거 결과는 정확하게 민주주의 제도를 지켜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부당하다, 원위치로 원상복구해라는 의미로 이해되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제기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총선 이후에는 새로운 의회 내 정치지형을 통해 다시 그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로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열린우리당의 개혁드라이브, '회의적'

조- 의석점유율로 볼 때, 예컨대 열린우리당의 과반의석 확보와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 그리고 정치권의 세대교체 등을 근거로 개혁드라이브가 강화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 보수파들이 총선을 받아들이는 태도에는 상당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보수파들은 민주화에 대해서 잠재적 불안감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개혁이라고 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기득이익 상실, 불이익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총선과 대선에서 패배해 왔는데, 개혁의 가능성, 이것이 가져올 파괴적 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과대평가하고 강조하는 것, 미리 얘기해서 개혁이 센 것에 대해 브레이크를 걸고 은연중에 제어할 수 있는 여론을 조성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진보파를 포함해서 개혁을 요구해왔던 입장에서는 이것은 당위다, 민주화 이후 개혁돼야 할 것이 많았고, 국민적 기대도 높았지만, 보수파로 인해 무너지자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이른바 '기대-실망의 사이클'은 이런 과정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이번에는 여소야대의 이런 좋은 조건이 생겼으니까 상당히 개혁이 예상되지 않느냐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저는 개혁파가 요구하는 정도의 개혁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그러려면 개혁을 추진할 이념, 비전, 결의, 리더십과 추진력이 요구되기 때문이지요. 우리 사회 최상층의 기득 이익에 일차적으로 봉사하는 가치, 규범, 담론을 헤게모니라고 말할 때, 열린우리당이 이러한 헤게모니와는 다른 대안적 비전과 리더십을 가졌는가를 생각해봐야 하기 때문이지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야말로 '다른 종류의 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이 이러한 기성의 헤게모니에서 벗어난 새로운 의제설정과 구체적인 정책 제시를 통해 민주개혁을 추동하는 정치적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정치적 자극이 열린우리당에 주어질 때 집권여당도 자극을 받아 개혁의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탄핵 철회와 이라크 파병 철회에 대하여

조- 민주노동당은 탄핵철회와 이라크파병안 철회를 16대 국회에서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후자의 경우 그렇게 안 된다면 17대 국회에서 이라크 파병 철회 동의안을 제출할 계획인데요.

최- 권영길 대표가 탄핵철회를 16대 국회에서 철회하라는 말은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탄핵과 같은 굉장한 사건을 헌법재판소에서 판단하기 이전에 정치권에서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헌재에 넘어간다는 것은 사법부의 역할이 굉장히 커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화라고 하는 것이 의회역할을 크게 만드는 것이었고, 사법부는 뒤에 숨어서 그에 대한 역할에 대해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탄핵으로 사법부가 전면으로 등장해 힘을 갖는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정치의 힘이 그만큼 적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정치가 갈등해소의 능력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법부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안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급적으로 저는 정치 안에서 이를 해결하는 것이 좋지, 이를 정치 밖으로 끌고 나와서 제3자에 의해, 말하자면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독립적인 사법부가 한다는 것은 민주적인 내용 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하고 싶습니다.

이라크 파병의 경우 17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이 반대할 수 있지만, 국회에서 재심대상이 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문제는 한미관계의 복잡성을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 입니다. 노정부가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외정책과 관련해 우리가 내부적으로 정치외교적 관점에서 할 수 있으려면 여러 수준에서 독립성과 자율성, 강한 리더쉽 등 조건이 많아야 하는데, 국내의 보수적 여건으로 볼 때 굉장한 좌우분열을 증폭시키는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문제는 상당한 사려깊음이 필요합니다.

이미지 정치는 내용 없음의 다른 표현

조- 3보 1배, 눈물 등 17대 총선은 이전과는 달리 이미지 정치에 의존하는 경향을 많이 보였습니다. 현대 정치의 한 특성으로 이미지정치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자기 정체성이 없는 가운데 이미지만이 부각될 때 부정적 효과는 무엇일까요.

최- 이미지 정치는 현대정치에서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미지 정치는 내용 없는 것의 다른 한 표현이죠. 정당의 정체성이 확실히 형성되지 못하고 있고, 이념적 지향이나 정책의 기조도 구체적으로 표명할 준비가 못돼 있기 때문에 이런 상태에서 감정과 감성을 호소하고, 동원하는 정치는 내용이 없음, 내용의 불분명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지역당 구조가 정당간의 정책적 이념적 차별성이 없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지역당 구조의 핵심이 이성보다 바로 감정이잖아요.

정당체제와 아래로부터의 참여

조- 선생님께서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저서에서도 늘 정당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정당체제의 강조 심화 확산을 강조하시다보면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참여정치, 거리의 정치, 생활정치 등 다른 영역에서의 민주정치의 심화와 확산을 가로막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최- 그것은 두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는 지난 번 선거전에 정개협(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이 내놓은 정치개혁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정개협안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딱 한가지 개혁안인 본격적인 비례대표 1인2표제는 긍정적이지만, 나머지는 개악입니다.

왜냐하면 정치를 대중으로부터 분리시키기 때문입니다. 부패이슈와 결합하면서, 정치의 부패라는 것은 후보자가 대중과 만나는 접촉점에서 부패가 발생한다, 따라서 이 접촉점을 차단하거나 줄어야 한다는 논리로 대중동원을 못하게 하고, 후보자가 유권자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줄였습니다.

이런 방법으로는 부패를 척결하지 못하려니와 지엽적으로는 선거비용은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부패구조는 바꾸지 못합니다. 부패는 전체 사회구조에서 나온다는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잘못된 사태진단과 처방이 낳은 결과입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유권자들은 후보자가 누가누군지 모르게 되는 등 후보자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적어졌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대중매체가 과거 정당의 역할을 대체해가는 형편인데, 매스미디어의 역할을 엄청 증대시키고 매스미디어가 정치의 중심적 역할이 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매스미디어를 컨트롤(조절)하는 세력이나 사람이 정치를 컨트롤한다는 얘기입니다. 정당의 역할을 대체하게 되는 거죠.

대중의 삶으로부터의 요구를 직접 들어야 하는데, 대중과 정치의 관계가 대중매체의 개입으로 차단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그렇게 되다보니 선거가 인간과 인간이 만나서 접촉을 통해 창조, 창출되는 것이 없어지는 굉장히 냉랭한 선거가 됐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정치적 무관심이 증대되는 효과가 나올까 걱정됩니다. 정치의 참여를 줄이는 효과로 가져올 위험성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정치참여의 채널이 정당만은 아닙니다. 사회집단들이나 운동들, 소규모 모임, 자발적 결사체, 사회운동 활동들이 연계되어 하나의 그물망으로 컨트롤하는 조직을 정당이라고 볼 수 있다면, 이 같은 움직임들은 활성화돼야 되고, 이런 채널들이 굉장히 많아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참여의 폭도 넓어지고 수준도 두터워집니다. 아래로부터의 참여확대가 확대돼야 하고, 정당의 하위 조직이나 기구도 확대돼야 합니다.

민주노동당, 새로운 전략적 방향 설정 필요

조- 민주노동당이 현재의 정체성으로 얻은 13%라는 정당득표율이 과대평가되고, 새로운 내용으로 채워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어떤 뜻입니까.

최- 민주노동당의 정체성, 이념적 비전과 노선을 검토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급진주의 내지는 이상주의나 현실 사이에서 선택하는 '특성의 정립'이 될 것입니다. 한꺼번에 10명이 의회에 진출한 것은 민주노동당으로 하여금 상당한 자기정립의 혼란과 어려움을 경험을 경험하게 할겁니다.

지금까지는 책임지지 않거나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었지만, 이제 문자 그대로 제도권 내로 진입한 상태에서 무책임한 소리를 하게 되면 민주노동당의 신뢰성은 많이 떨어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성이 있어야 합니다. 10명이 대거 국회로 들어가기 때문에 이것이 빨리 전환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먼저 민주노동당이 대면하고 있는 큰 영역에 있어서 일관된 방향이 있어야 합니다. 이데올로기, 대북정책 한미관계에 대해서 일정한 민주노동당의 방향설정이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반미적 요소, 무조건 대북포용정책 등을 주장해 온 것처럼 보여왔는데 그것을 체계화하고, 현실적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경제정책 또한 신자유주의 반대로 입장 정리가 된 것처럼 보여왔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사태를 이분법적으로 설정하는 것은 진보를 담보하지 못합니다. 정교화, 세분화, 구체화돼야 합니다. 세분화된 이슈영역을 종합해서 전체를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지기반을 확대해야 합니다.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는 정치적 영역에선 민주화가 됐지만, 우리 사회 전체를 구성하는 하위 조직 기구에서는 민주화가 안됐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대학 등 이런 데서는 민주화하고 상관없이 옛날 구조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그럴 때 이것을 다할 수 없지만, 중요한 전략적 포인트에서 어떻게 사회의 하위구조를 민주화 할 것이냐 이런 문제는 중요한 정책적 영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동당이 재벌해체 등 이렇게 외칠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재벌이 사회적 힘과 연결이 돼 있는가하는 문제를 통해 합리적으로 재조정하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지배 이데올로기인 냉전반공으로 고통을 많이 받아왔는데 이런 것이 다 물질적 기반 위에 있기 때문에 말로만 이를 극복하고 해체하자는 것은 의미가 없고, 이것이 딛고 있는 물질적 기반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약화시킬 것인가를 고려해야 합니다.

민주노동당의 역할, 광범위하게 열려 있어

조- 당과 노조와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는 것이 당과 노조의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준(準) 정당적 역할을 했던 시민사회단체와 당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 것이 진보정치의 성장을 위해 좋은 것인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최- 당과 노조, 시민사회의 관계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10석을 얻어 제3당이 되어 캐스팅 보트 역할도 하고, 정국의 방향을 잡아야 하는 전략적 위치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노동자 이익을 배타적으로 대변하는, 협애한 정당입니다. 그럴 때 이 문제가 선택의 대상이 됩니다.

말하자면 노동자의 이익만을 대변할 것이냐, 내친김에 브라질의 PT처럼 집권까지 바라보는 것으로 나갈 것이냐, 전략의 방향설정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노동자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는 도움되지만, 전체 국민을 대변하는 표의 증대에는 절대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 이익만으로는 13%는 많다는 겁니다. 노동자뿐만 아니라 다른 그룹에서 많이 지원했기 때문에 표가 많아졌습니다. 다음선거까지 이를 선택하지 않으면 이 지지율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을 터서 노동자 뿐 아니라 대한민국 중하층 서민, 모든 소외받는 주변 계층을 대표해 상층 계급과 대항해 싸운다면 폭넓은 지지가 될 것입니다. 지금 민주노동당의 레토릭은 필요할 때는 이 얘기하고 다른 때는 저 얘기하는 왔다갔다하는 원칙이 없어 보입니다.

당과 민주노총과의 관계가 내부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겠는데, 내부사정을 잘 몰라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독일 사민당처럼 주도권을 당이 노조 위에 리더쉽을 가질 것인지 아니면 일본 사민당처럼 노조가 주도권을 가질 것인지를 정해야 합니다. 민주노동당이 전국적 조직으로 확대하려 할 때 폭넓은 다계급적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배타적 지지기반만을 갖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을 것입니다.

시민사회세력은 민주화 이후에 노동운동과 분화됐습니다. 중산층 지식인, 전문가 중심의 운동으로 자리잡은 것이 우리나라의 시민운동입니다. 제가 우리나라의 시민운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 것은 서민생활에 무관심할 뿐 아니라 지식인 엘리트 그룹이며, 온갖 이슈를 다하고 있다는 겁니다.

경실련과 참여연대의 경우 모든 문제를 다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민운동이 한국에서 발전할 수 없는 제약의 하나입니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 시민참여 없는 시민운동, 사회 뿌리 내리지 않는 활동가 중심의 시민운동, 언론에 의존하고, 헤게모니의 일부가 된 시민운동이 됐습니다. 그 한계가 너무도 분명합니다.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은 분리되어 있습니다. 노동운동은 현실과 생활에서 직접 나오는 문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관념적으로 될 수 없으나, 시민운동은 본래의 성격과 의미를 상실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민주노동당의 역할이 설정할 수 있는 문제는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것과 중산층화한 시민운동 사이에 광범위하게 열려 있습니다.

이 영역의 운동을 확대하면 됩니다. 노동조합만 배타적으로 갈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IMF의 영향을 받은 중산층, 외국인노동자 문제 등 우리 사회에 대변되지 않는 광범위한 층만 해도 넓습니다. 시민운동은 이를 대표하지도 대변하지도 않습니다.

'다른 종류의 정당' 민주노동당

조- 민주노동당의 경우 의정활동에서 때에 따라서는 다른 당과의 제휴도 하게 될 것입니다. 의회 내에서 민주노동당의 역할은 어떤 것일까요.

최- 열린우리당과의 제휴가 필요하고, 요구된다고 보는데, 선택은 현실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민주노동당의 요구는 맥시멈을 추구하는데 조건은 그렇지 못해 상대적으로 제휴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보다는 민주노동당의 현재의 역할은 구체적인 정책적 대안을 법률화하지 못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동당의 해야 할 역할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10석 밖에 안되고, 250석 이상을 보수정당이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류의 정당'이라고 내가 표현했는데 그것은 헤게모니가 아닌 얘기를 할 수 있는 정당이라는 겁니다.

의회가 얼마나 좋은 포럼입니까. 의회는 모든 사람이 다 들을 수 있는 포럼입니다. 기존의 헤게모니와 다른 이슈를 제기하고 다른 아젠다를 세팅할 때 밖에서 호응하는 것이고, 모르는 사이에 의식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지금 뭐가 문제인지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신문이 다 얘기하고 의제를 한정시키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만이 조중동이 던지는 미끼를 먹지 않고 다른 얘기를 할 수 있는 정당입니다. 그런 걸 국회의사당 올라가서 할 수 있습니다.

정리=문선영 ahimsa@kdlpnew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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