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의 경제학

수출기업은 잘나가는 반면, 내수기업은 울상입니다. 수출과 내수의 양극화가 최근 우리 경제의 가장 두드러진 모습입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4백만명에 다다른 신용불량자로 내수회복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체 노동자의 50%대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도 함께 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한 나라의 경제는 수출과 내수가 균형 있게 성장을 해야 발전합니다. 쉽게 생각해 수출만 잘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일본을 보면 수출은 잘하지만 극심한 내수 부진으로 몇 십 년째 장기불황을 해매고 있습니다.

‘저축은 미덕’이라는 표어가 유행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축이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닙니다. 적절한 소비 역시 미덕입니다. 어느 정도의 소비가 있어야 기업들이 생산을 많이 하고 이는 채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가져와 경제가 좋아집니다.

여기서 되돌아봐야 할 이들이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그들은 지갑을 열지 않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정규직에 비해 월급이 너무 적어 쓸 돈이 없는 것이 첫째 이유입니다.(민주노총 자료를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103만원으로 정규 노동자 201만원의 절반 수준 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언제해고 될지 모르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 돈을 쓰지 않기도 합니다.

한번 생각해 볼까요.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쓰는 것은,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 선생이 에서 말했던 것처럼 합리적인 경제행위입니다. 인건비 부담을 줄여 이윤을 높이는 것은 기업 경영의 과제이니까요.

반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 것도 합리적인 경제주체의 선택입니다. 물론 쓸 만큼 월급도 못 받지만 돈이 있더라도 오늘의 유쾌한 소비보다 내일의 불안한 미래를 위해 저축을 하니까요(정규직 노동자들 중에서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해고불안으로 지갑을 열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만).

국민경제를 이끌어 가는 가계와 기업, 두 쪽의 경제주체들은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경제 주체들은 합리적인 경제활동을 하는데, 보이지 않는 손이 척척 돌아가지 않을까요?

눈치 빠른 독자라면 제가 어떤 말을 할 것인지 감을 잡았을 겁니다. 이제 1929년 10월24일 미국증시의 대폭락에서 비롯된 대공황을 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공황은 공급이 수요를 초과해 빚어졌다고 경제학자들은 말합니다. 기업들은 엄청난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지만 수요를 찾지 못했고 제품을 팔지 못한 기업은 대규모 해고를 감행했습니다. 이는 다시 내수 부진을 낳고 기업들은 도산하는 악순환이 이어진 것이죠.

당시 케인스는 이를 유효수요라는 것으로 풀었습니다. 케인스는 대공황의 원인이 수요의 부족으로 일어났으며 이는 정부의 대규모 투자정책으로 풀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담 스미스 이래 경제학은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라는 공급위주의 관점에서 경제를 보게 됐습니다. 케인스는 이를 완전히 뒤집어 수요를 중심으로 한 해법을 내놓았고 이는 미국의 뉴딜 정책으로 채택돼 대공황 극복의 이론적 바탕이 됐습니다. 또 보이지 않는 손에 내버려 뒀던 시장에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수정자본주의를 낳게 했습니다.

다시 우리나라로 되돌아 가겠습니다. 국민의 정부는 금융위기에 따른 침체된 내수를 신용카드와 부동산 규제를 풀어 활성화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지금 상당한 부작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케인스를 비판했던 하이에크가 주장했던 것처럼 이런 식의 단기적 대책은 장기적으로 역효과를 드러냅니다.

결국 정부는 중장기적인 해법을 내놓아야 될 것입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침체된 내수를 끌어 올리기 위해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철폐를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엉거주춤하는 민간부분에 파급효과를 주기 위해서도 말입니다.

하지만 얼마 전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해법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노동계에서 말한 생색내기에 그쳤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정부가 ‘경제도 안 좋은 상황에서 비정규직 대책은 말이 안 된다’는 논리를 들이대는 사용자 쪽의 강한 저항에 고심한 흔적은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경제를 살리고 내수를 진작하기 위해서는 보다 강한 비정규직 대책을 내놨어야 할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민간 기업들 역시 자신들의 비정규직 남용이 결국 자신들이 만든 제품에 대한 구매력을 떨어뜨리는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1400만명의 노동자들 가운데 800만명에 가까운 이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덧붙임: 이달 초 인사가 나서 저는 사회부 안 시청팀으로 발령 났습니다. 뉴스메일 옆 방에 있는 김규원 선배가 저희 팀 팀장입니다. 앞으로는 좀 다른 주제를 찾아 뵐 것 같습니다. 노동계를 잠시 떠났지만 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그날을 위해 저 나름대로 노력할 것입니다. 한밤의 꿈은 아닐 것이기에.. 그럼 이만 총총..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경제학의 기초상식이 아닙니다
소비를 증진시키기 위해 비정규직을 철폐해야 한다?

첫째, 케인즈의 이론처럼 소비로 인해 투자와 생산이 증가하여 그 경제가 활황한다는 얘기는 우리나라 현실과 너무나 괴리된 이야기입니다. dj 정부의 잘못된 경기부양책 이후 국내경기는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은 어떤가요? 최근에 발표된 재벌들의 실적을 보면 현 경제상황과 너무나 대치되는 결과입니다. 수요는 물론, 공급측면에서 볼 때에도, 현재 투자설비조차 해외시장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발생하는 효용(고용효과, 총생산 등)은 당연 우리의 것이 아니겠죠. 케인즈의 이론은, 극단적인 closed economy나 기업의 국내공급이 클 때 적용되는 것이지 현 우리나라의 경제에 적용되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둘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 노동시장도 수요와 공급, 가격의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 또 다른 시장입니다. 노동의 수요는 정해져 있습니다. 외부에서의 압력으로, 기업의 입장에서는 정규직을 늘이기는 하겠지만, 그만큼 비정규직 직원 여러명의 효용을 요구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정규직으로 편입된 비정규직 노동자만큼, 혹은 그 이상의 실업이 발생할 것입니다. 근원적인 문제해결이 아닌 그런 단순한 조정으로는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착하면 법이 필요없다는 동화속 얘기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군요. 이런 단순한 논리로 해결되는 것이 왜 이렇게 큰 사회문제가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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