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약이 알고 싶다_ 25회] 우리나라 약값이 투명해서 문제? 제약사에 끌려다니지 말아야

- 침묵의 비용: 약가제도의 불투명성이 남기는 교훈

 

 

1998년, 영국 의학저널 랜싯(Lancet)에 게재된 한 논문은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홍역, 볼거리, 풍진(MMR)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논문의 저자인 앤드류 웨이크필드의 주장은 단 12명의 사례를 기반으로 했기에 의학적 근거가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은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끌었고, 백신에 대한 불신이 급격히 퍼졌다. 그 결과, 영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백신 접종률이 급감했고, 거의 사라졌던 홍역이 다시 유행했다. 해당 논문은 나중에 결과마저 조작으로 밝혀져 2010년 철회되었지만, 백신에 대한 불신은 여전히 남아 있다.

작은 사실 조각을 부풀릴 경우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사례는, 오늘날 신약의 약가제도를 둘러싸고 반복되고 있다.

지난 14일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MFN(Most Favored Nation, 최혜국) 약가제도가 한국의 신약 접근성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미국의 비싼 약값을 낮추기 위해 다른 나라의 약가 최저가를 미국 약값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MFN 제도를 발표했다. 제약사들이 신약을 냈을 때 MFN 제도로 인해 한국의 약가를 참조하게 되면 가격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으므로 한국에 신약을 출시하기 꺼릴 거라는 내용이었다.

한지아 의원의 주장은 사실관계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MFN 제도는 1인당 GDP가 미국의 60% 이상인 국가들만 대상으로 삼는다고 밝혔으며, 한국은 이 기준에 한참 모자라서 참조 대상국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약회사가 한국의 약가제도 떄문에 신약을 출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코리아 패싱' 주장은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며 환자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비밀약가제와 투명성의 후퇴

이날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도 문제적이었다. 정 장관은 한국의 약가제도가 지나치게 투명해 다른 국가들의 약가 협상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2014년부터 항암제와 희귀질환 치료제 등 신약에 대해 비밀약가제를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기존보다 뛰어난 효과를 보이는 신약에만 비밀약가제 혜택을 제공했지만, 2020년부터 적용 대상을 확대하여 기존 치료제와 큰 차이가 없는 신약에도 비밀약가제를 적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항암제 및 희귀질환 치료제들이 비밀약가제를 운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투명성이 지나치다고 주장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비밀약가제는 초국적 제약사의 이윤극대화를 위한 전략이다. 국제적으로 의약품 가격이 불투명하면, 가격 협상력이 약한 국가들은 참조할 다른 나라 가격이 없어지기 때문에 약가 협상에서 크게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고소득 국가들이 백신을 선점하며 구매 계약을 비밀로 유지했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 모더나는 2021년 상반기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 1회당 42달러에 백신을 판매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유럽연합이 구매한 가격(18달러)보다 약 2.3배 비싼 가격이다. 중저소득 국가들은 비싼 가격을 감당해야 했고, 이는 백신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투명성은 국제적 과제이며,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등에 대한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2019년 제72차 세계보건총회는 의약품과 백신의 가격 투명성을 확대하라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 후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제약사들에게 신약 개발 과정에서 사용된 공적 자금 규모를 공개하도록 요구했으며,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약가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 건강기술평가(HTA)를 통해 집단적으로 가격을 논의하고 있다. 이는 초국적 제약사의 비밀약가 전략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의 일환이다.

반면에 한국은 제약사의 요구에 따라 비밀약가제를 운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넓고 깊은 비밀화를 검토(비밀약가제 확대)하고 있다. 이는 초국적 제약사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책 방향으로, 장기적으로 국내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은 초국적 제약사의 요구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 연대에 참여하고 약가 투명성을 확대하는 것이다.

검찰, 사법부, 감사원의 특수활동비가 공개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투명성과 책임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공적 제도는 투명성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의약품 가격만 불투명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약가 불투명성은 초국적 제약사의 이윤 극대화를 돕는 도구일 뿐이다. 부유한 국가들은 국력을 이용하여 신약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국과 같은 국가는 제약사가 요구하는 높은 약값을 수용하거나 신약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것이 자명하다.

의약품 가격의 투명화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민 건강과 직결된 문제이며, 더 나아가 국제적 정의와도 연결된다.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 초국적 제약사의 요구를 순응하는 것이 유일한 전략이 아닐 것이다. 초국적 제약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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