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혁신의 탈을 쓴 특혜... 리베이트 족쇄를 푸는 복지부를 규탄한다

- 13년간 운영된 혁신형제약기업 인증제, 실패를 교훈삼는 제도 개선이 아니라 개악에 나서

- 불법 리베이트 기업에게 약가 우대? 국민 건강보다 제약사 배불리기에 열중

 

 

 

최근 보건복지부가 혁신형제약기업 인증제에 관한 제도 개선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제도 도입 13년 만에 대대적인 개편을 하겠다는 것이다. 개편안의 핵심은 명확하다. 기준 초과 불법 리베이트 적발 시 혁신형 제약사 인증을 취소하는 현행 규정을 '점수제'로 전환해 인증 취소 대신 '감점'으로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불법 리베이트로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제약기업들이 다시 혁신형제약기업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겠다는 것이다.

 

 

문턱 낮은 인증 기준, 사실상 '모두에게 주는 특혜'

 

기존 혁신형제약기업 인증제는 중소 제약사 및 벤처기업은 연간 50억원 또는 매출액의 7%에 해당하는 금액을, 중대형 제약기업은 매출액의 5%를 연구개발에 투자하면 인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인증 기준 중 하나로 과거 3년 이내 리베이트 등 일정 수준의 행정처분을 받은 기업에게 결격사유를 적용하여 제약사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연구개발 활동에 대한 인증 기준은 문턱이 너무 낮아 국내 대부분의 제약회사가 관련 기준을 충족하는 수준이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가 기업의 공개 자료를 분석한 결과, 매출 2천억원 이상을 달성하고 있는 38개 기업 중 연구개발비 비중이 5%를 넘는 기업은 27개에 달했다. 개발된 지 오래된 주사제 및 수액을 주로 생산하는 기업, 보톡스 전문 기업, 원료의약품 생산 기업, 일반의약품이나 식품류 마케팅에 주력하는 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이 연구개발비 기준을 충족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한국에서 대부분의 중대형 제약기업이 정부가 말하는 '혁신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제약회사에게 혁신형제약기업 인증의 유일한 허들은 사실상 불법 리베이트 등의 행정처분 여부였고, 이는 기업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었다. 그런데 지금 복지부는 그나마 남아있던 이 마지막 족쇄를 풀어주려 하고 있다.

 

 

혁신형제약기업 특혜, 환자와 건보재정에게도 부담

 

기업들이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에 목을 매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돈이다. 2021년 혁신형제약기업 디렉토리북에 따르면, 2019년 혁신형 제약기업들은 연구개발 직접 지원으로 약 270억원, 법인세 감면 등 세제지원으로 약 1,420억원을 지원받았다. 도합 1,7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게다가 혁신형제약기업이 생산하거나 개발한 의약품 중 일부는 적정가격보다 비싸게 약값이 책정된다. 건강보험공단과 환자가 혁신형제약기업 생산 의약품을 구매하면서, 매년 500~1000억원 규모로 약값을 더 내고 있다. 심지어 혁신형제약기업 혜택은 다국적 제약사도 동등하게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중증 건선 치료제로 사용되는 스텔라라는 다국적제약사인 한국얀센이 개발했지만, 혁신형제약기업이기 때문에 약가우대를 적용받아 원래 책정 가격보다 연간 치료비용을 약 90만원 가량 환자와 공단이 비싸게 구매하고 있다.

 

엄청난 재정과 환자부담을 유발하는 혁신형제약기업 인증제는 약 13년간 지속되면서 이룬 성과는 특별히 없다. 오랜 기간 정부의 지원을 받은 기업들 중 해외에서 혁신성을 인정받은 글로벌 신약은 단 하나도 없다. 이는 아쉬운 실패가 아니라 당연한 결과다.

 

우리가 빅파마라고 부르며 글로벌 신약을 출시하고 있는 다국적 제약사는 매년 10조원 이상의 규모를 연구개발비에 투자하고 있다. 연간 100조원에 달하는 매출에도 불구하고 매년 15% 이상을 연구개발비에 투자한다. 이에 비하면 매출 규모가 100분의 1에 해당하는 국내 기업이 연간 5% 연구개발비 투자로 특별한 성과를 얻겠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실패한 제도를 개선하는 대신, 오히려 불법 리베이트 기업에게까지 문을 열어주는 방향으로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제약산업 육성이 아니라 제약기업 특혜 주기에 불과하다.

 

 

"주가조작 세력에게 패가망신의 본보기를 보여주겠다"던 이재명 정부의 패기는 의약품 시장을 교란시키는 제약기업에게는 이중잣대로 나타나고 있다. 국정감사에서도 제도 개선의 방향과 지원 범위를 두고 다양한 목소리가 오갔지만, 복지부는 국민의 건강보다 제약기업의 편의를 우선시하는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불법 리베이트는 의료현장을 좀먹는 사회악이다. 값비싸거나 불필요한 약을 처방하게 만들어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다. 그런 기업에게까지 각종 특혜를 제공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지 말고, 무조건적 제약기업 봐주기 행보를 당장 멈춰야 한다. 특정산업 밀어주기에 앞서 건강보험 재정과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정책을 추진하라. 13년간 실패한 제도를 반복하지 말고, 불법 리베이트를 뿌리뽑기 위한 강력한 처벌과 투명한 의약품 시장제도 마련에 나서라.

 

 

 

2025년 11월 3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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