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정은경 장관의 이중약가제 확대시사, 제약기업 특혜 정책 중단하라

- 트럼프 MFN 핑계로 약가 불투명성 확대하려는 복지부 규탄한다

- 국제사회 투명성 강화 흐름 역행하는 반민주적 정책 추진 중단해야

 

 

 

지난 14일 국회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중약가제 확대를 시사하는 발언을 한 것은 국민 건강권보다 제약기업 이익을 우선시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최혜국 약가제도(MFN)를 핑계로 내세웠지만, 이는 다국적 제약기업들의 오랜 숙원사업인 약가 불투명성 확대를 위한 끼워맞추기에 불과하다. 복지부는 제약기업 특혜정책 추진을 즉각 중단하고, 국민을 위한 투명한 약가정책으로 돌아서야 한다.

 

거짓 논리로 포장된 제약기업 특혜정책

한지아 의원과 정은경 장관이 내세운 '코리아 패싱' 우려는 명백한 허위 주장이다. 트럼프의 MFN 정책 대상국은 OECD 회원국 중 1인당 GDP가 미국의 60% 이상인 국가들로 제한된다. 미국 1인당 GDP 8.6만 달러(2024년, 세계은행 자료 기준)의 60%는 5만 달러가 넘는데, 한국은 이에 턱없이 부족하다. 단순한 산수로도 한국이 비교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 명확함에도, 국정감사장에서 허위사실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핑계로 이중약가제 확대를 주장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미 한국이 광범위한 비밀약가제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3년 위험분담제도 도입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비교약제가 없이 급여된 약의 90% 이상은 이중약가제 적용을 받았다. 거의 모든 항암제와 희귀질환 치료제가 이미 불투명한 약가협상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확대는 제약기업 배불리기 이외에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없다.

 

국제사회 투명성 강화 흐름에 역행하는 반민주적 정책

이중약가제 확대는 국제사회의 투명성 강화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반민주적 행태다. 2019년 세계보건총회는 회원국들에게 제약기업 지불 가격의 공적 공유 방안을 마련할 것을 결의했다. 이후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의약품 가격 투명성 관리 방안을 발표했고, WHO 유럽본부와 노르웨이는 오슬로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켜 의약품 투명성 수호를 위한 국제연대를 구축했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 아일랜드는 “베네룩사 이니셔티브(BeNeLuxA initiative)”를 통해 약가정보를 공유하고 공동협상으로 약가를 낮추고 있으며, 지중해 연안 국가들도 “발레타 선언(Valleta Declaration)”으로 제약사 전략에 공동 대응하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시민단체가 고가 치료제 가격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에서 승소했다. 이처럼 전 세계가 제약기업의 불투명성 전략에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만 거꾸로 가겠다는 것인가?

독일이나 스위스 등이 약가 불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은 빅파마 본사가 위치한 국가로서 제약기업과 이해관계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것인가?

 

 

약가 불투명성은 신약 고가화만 부추긴다

 

이중약가제 확대가 환자의 의약품 접근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명백한 거짓이다. 약가 불투명성은 오히려 신약의 고가화를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온다. 제약기업들이 각국에서 서로 다른 가격 정보를 숨기며 더 높은 가격을 요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진정 환자의 의약품 접근권을 고민한다면, 제약기업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투명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다. 약가협상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이 세금으로 지불하는 약값에 대한 알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 원칙이다.

 

복지부는 제약기업 로비에서 벗어나 국민을 위한 정책으로 돌아서야

최근 정은경 장관 뿐만 아니라 이중규 건강보험정책국장도 전문기자협의회에서 이중약가제 확대를 시사하였다. 복지부 관료들의 일련의 발언은 복지부가 제약기업의 요구에 굴복했음을 보여준다. 다국적 제약기업들이 "신약 출시를 하지 않겠다"는 협박성 요구로 줄곧 이중약가제 확대를 압박해온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제 복지부가 그들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행위다.

11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이중약가제 확대가 검토된다고 알려지지만, 이는 이미 정해진 결론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할 것이다. 복지부는 제약기업 특혜정책 추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11월 건정심 안건에서 이중약가제 확대 검토를 제외하고 약가협상의 투명성을 강화하여 국민이 세금으로 지불하는 약값에 대한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또한 WHO와 각국의 투명성 강화 결의에 적극 동참하며, 제약기업의 협박성 요구에 굴복하지 않는 원칙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국민의 건강권과 알 권리를 지키는 것이 보건복지부의 존재 이유다. 제약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으로 전락한 복지부는 즉각 국민을 위한 정책으로 돌아서야 할 것이다.

 

 

2025년 10월 16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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