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건강보험공단연합뉴스
우리가 낸 건강보험료의 민낯... 이거 보면 화날 겁니다
건강보험 급여 의약품 중 가장 많이 처방되는 약이 뭘까? 흔히 고가 항암제나 위장약을 떠올릴 수 있지만 부동의 1위는 항혈전제 및 고지혈증약을 포함한 동맥경화용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23년 급여약품비 지출현황 분석결과'에 따르면, 전체 약제비의 10%가 넘는 2.8조 원이 동맥경화용제를 먹는 데 사용되었다. 성분별로 비교해도 전체 1위는 '에제티미브+로수바스타틴(대표 상품명 로수젯)'이었다. 놀라운 것은 2위다. 5630억 원이 사용된, 가장 많이 처방된 약 2위는 바로 콜린알포세레이트였다.
콜린알포세레이트는 약학 전공자에게도 생소한 이름이다. 의학이나 약학 교과서에서 그 이름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알파GPC로 더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한 콜린알포세레이트는 어떤 약일까?
미국의 건강기능식품이 한국에선 처방 의약품?
201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건강보조제(또는 건강기능식품, 이하 건기식) 판매 회사에 공식 경고문을 발표했다. 건기식이 치매에 효능이 있는 것처럼 허위로 마케팅하는 것에 대해 중단하라는 경고였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알츠하이머 환자의 인지기능 저하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거나 치매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식의 표현, 뇌졸중, 파킨슨병 등 신경계 질환에 사용되고 있다는 표현 등은 마치 건기식을 약물로 인식하도록 하는 허위 마케팅이라는 것이다. 지적을 받은 대표적인 제품이 바로 알파 GPC이고 다른 이름이 콜린알포세레이트다.
콜린알포세레이트는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아세틸콜린을 보충하기 위한 보충제이다. 콩(대두)이나 계란의 노른자(난황)에서 추출한 레시틴을 원료로 한다.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측은 콜린알포세레이트가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보충하여 뇌 신경세포 손상을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임상연구를 체계적으로 고찰한 자료에서는 콜린 보충제가 건강한 사람의 인지기능을 개선하거나 치매관련 질환의 임상적 이익을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오히려 여러 연구에서 혈장 콜린 수치가 상승하면 트라이메틸아민-N-옥사이드(TMAO)가 발생하여 심혈관 질환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설명한다.
또한, 서울대병원 연구팀은 콜린알포세레이트를 처방받은 1200만 명을 10년간 추적·관찰한 결과, 콜린알포세레이트를 복용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뇌졸중 위험이 43% 높았다는 연구를 2021년에 미국의사협회 저널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에 발표하기도 하였다.
외국에서는 건기식 수준에서 소비되고, 임상적 근거는 부실하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작용 논란까지 있는 이 약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먹는 약 2위에 올랐다. 더 황당한 것은 이 문제가 5년 전부터 시민단체에 의해 제기되었고, 정부가 2020년에 처방을 제한하기 위해 급여 축소를 결정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건강보험 재정에서 5000억 원을 이 약에 쏟아붓고 있다. 이 끔찍한 '건강보험 재정 절도 사건'의 범인은 누구인가?
약제관리제도의 사법화
▲서울의 한 약국에서 약사가 약을 정리하고 있다. 자료사진.연합뉴스
시민단체인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는 건강보험 곳간 재정을 훔쳐 가는 도둑을 잡지 않는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2019년에 공익감사청구를 제기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국정감사에서 문제를 숨기려 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비판했다. 정부는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에 나섰다. 복지부는 '급여 적정성 재평가'를 통해 효과가 불분명한 약제들을 다시 살펴보겠다면서 첫 번째 약제로 콜린알포세레이트를 지목하였다.
2020년에 발표된 재평가 결과는 뻔했다. 당연히 검증가능한 효과는 없었다. 다만 오랜 기간 사람들이 먹었기 때문에 사회적 요구도가 높다는 점을 고려하여 급여 삭제가 아니라 본인 부담률을 높이는 방법으로 급여 축소 결정을 하였다. 결정 과정에서 건강보험 가입자단체와 공급자단체, 정부 관계자가 함께 사안을 논의했고 급여 축소를 결정했다. 효과도 없는 약의 사용을 통제하려는 당연한 조치였다.
하지만 콜린알포세레이트로 돈을 벌던 제약사들은 즉각 반발하였다. 대웅바이오 등 39개 회사는 법무법인 광장과 함께, 종근당 등 45개 회사는 법무법인 세종과 함께 법적 대응에 나섰다. 대형 로펌들은 콜린알포세레이트 급여 축소에 대해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급여 축소 결정에 대해 집행정지도 청구했다.
재판부는 집행정지에 대해 대형 로펌의 편을 들어줬다. 대형 로펌들은 매년 4000억 원의 수익이 발생하는 약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을 때, 제약사들이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입을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받아준 것이다. 반대로 불필요한 약에 구매를 지원해야 하는 건강보험 재정의 손실과 그 약을 복용하는 환자들의 이익은 고려되지 않았다.
집행정지 결정 이후에 본안소송은 흡사 전쟁터였다. 대형 로펌들은 소송을 지연시키는 전략을 취했다. 본안소송 결과가 하루만 지연되어도 제약사는 약 14억 원을 벌어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연되고 지연되던 소송은 5년 만인 지난달에 결과가 일부 나왔다. 종근당과 법무법인 세종에서 제기한 급여 축소 취소소송이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하였다.
하지만 대웅바이오가 제기한 소송은 여전히 2심에 머물러 있다. 만약 대웅바이오마저 소송에서 패소하더라도 5년이 넘는 지연을 통해 제약사들은 2조 원 넘는 매출을 얻었기 때문에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형 로펌의 법 기술과 고위공직자들의 줄서기
대형 로펌들은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최근에 제약회사와 정부 기관 간 소송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제약사들은 과거에 특허 관련 소송만 진행했지만, 최근에는 불법 리베이트나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GMP) 위반에 의해 행정처분을 받아도 소송을 제기한다. 제도가 유리하게 바뀌면 소급 적용해야 한다고 소송하고, 불리하게 바뀌면 부당하다고 소송을 제기한다. 그리고 소송에서 지더라도 지연시킴으로써 이익을 취한다.
이런 소송이 늘다 보니 대형 로펌에서 헬스케어팀을 엄청나게 강화하고 있다. 김앤장은 정해민 전 건강보험공단 약제관리실장, 곽명섭 전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 등 고위공직자들을 영입했고, 문재인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차관을 지낸 김강립 전 식약처장의 영입도 "기정사실화 된 상황"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를 보도한 언론은 "의약품 인허가 등을 관장하는 식약처장을 역임해 로펌 업계에서 가장 비싼 몸값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덕철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법무법인 세종, 양성일 전 보건복지부 차관은 법무법인 화우의 영입이 유력하다고 보도되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에서 일했던 고위공직자들이 대형 로펌으로 대거 들어가고 있다. 제약기업의 이익에 충실한 로비스트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서 어느 정도 질병 치료에 필수적인 약을 적정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이유는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의 노력으로 약제급여제도가 안정적으로 관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의약품의 가격과 급여 결정이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면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게다가 약가협상도 로펌이 대리하여 참여한다. 의약품 관리 제도의 사법화를 통해 대형 로펌은 엄청난 시장을 창출했으며, 이들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고위공직자들을 고액의 돈으로 매수하는 모양새다. 매년 5000억 원이 팔리던 콜린알포세레이트의 급여 축소 지연을 통해 제약사의 꼼수, 대형 로펌의 법 기술, 그리고 고위공직자들의 줄서기를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 끝을 우리는 지켜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건강보험 재정은 누군가의 주머니에 채워질 것이고 우리의 건강은 분명 위협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