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코로나19시대, 한국의 공적 백신 생산시설은 무엇을 했나?

 

- 한국민중건강운동(PHM) 4차 브리프 배포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작년 한해 대표적인 코로나 방역 모범국으로 불리며 코로나19 마케팅에 성공한 국가 중 하나이다. 이를 배경으로 한국에서 개발된 코로나19 진단키트는 세계적 감염병위기 시대에 글로벌 공공재가 아니라 한국의 새로운 먹거리 산업으로 이용되었고, 코로나19 치료제 개발도 방역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된 「한미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을 계기로 한국은 ‘글로벌 백신 허브국가’라는 새로운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외국 정상과의 회담에서 한국이 보유한 대량의 바이오의약품 생산역량을 기반으로 전 세계적으로 부족한 코로나19 백신 생산역량을 확보할 수있다고 공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에서 개발 혹은 위탁생산 중인 백신의 특허 출원을 독려하고, 코로나19 백신의 지적재산권 독점 문제에 침묵하는 등 감염병 위기를 틈타 백신특허 독점에서 발생하는 ‘콩고물 주워먹기’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적재산 독점은 국제사회가 직면한 코로나19 백신 수급불안의 근본적 원인이다. 백신 생산역량을 가진 많은 시설들이 실제 활용되지 못하고 있으며, 부족한 물량으로 인해 국가간 백신 불평등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 한국 또한 여전히 백신 수급 불안에 자유롭지 않으며,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고통받는 문제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백신 생산량 확대를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생산기술 이전을 위한 컨소시엄을 출범하였으나 민간회사들은 지적재산권 공유 요청에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지적재산 독점으로 인해 코로나19 백신은 ‘글로벌 공공재’가 아닌 제약사의 이윤추구만을 위한 상품으로 전락해 버렸다.

 

잘 알려져 있듯이 대다수의 코로나19 백신은 상당한 수준의 공적 지원을 통해 개발되었다. 특히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모더나 백신, 그리고 임상시험을 완료한 노바백스 백신은 세계 백신 공동분배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의 공적 지원을 받아 개발되었다. 국내 기업들의 백신 후보물질 역시 공공연구기관과의 협업과 공적 연구개발 자금 지원을 받아 개발되고 있다. 이러한 백신에 대한 공적 지원은 개발 뿐만 아니라 생산에도 상당한 수준으로 이뤄진다. 지난 브리프를 통해 개발과정의 공적 지원에 대해 살펴보았다면 이번 브리프는 백신 생산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를 위해 백신 생산시설에 대한 공적 지원, 특히 공적 생산시설의 존재와 활용 현황에 대해 정리하였다.

 

공적 생산시설은 보통 국가별 의약품 생산체계에서 필수의약품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영국은 보건부 산하에 PBL(Porton Biopharma Limited)이 탄저병 백신 등 백신이나 바이오 의약품을 개발 및 생산하고 있으며, 프랑스도 정부소유의 LFB(Laboratoire français du Fractionnement et des Biotechnologies)가 희귀·난치성 질환 중심으로 15개 종류의 혈장 및 단백질 치료제의 생산·공급하는 등 공적 역할을 수행한다.

 

한국도 대표적으로 3곳에 100% 공적 재원으로 설립된 공적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정부로부터 자료를 제공받지 못해 온라인에서 구득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공적 생산시설은 민간 제약사의 백신 생산을 대신 수행하거나 보완하는 기능을 담당할 뿐 사실상 공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안동 동물세포 실증지원센터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출연한 백신지원센터 중 하나로 총 1,029억원의 공적재원을 통해 설립되어 원액 생산(200 L x 2개, 1,000L x 1개)과 완제 생산(바이알 충전 12,000병/시간, 프리필드 시린지 충전 10,000도즈/시간)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안동 지원센터는 국내기업인 셀리드, 스마젠/LG화학에서 개발할 백신 생산 계약을 체결하였으며, 러시아에서 개발한 스푸트니크V원료의약품 생산 계약도 체결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화순 미생물실증지원센터는 안동 지원센터와 마찬가지로 산업통상자원부의 백신지원센터 중 하나로 총 836억원의 공적재원이 투입된 백신 개발 및 생산을 지원하는 시설이며, 원액생산(50L x 1개, 200L x 2개, 1,000L x 1개)과 바이알 충전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화순 지원센터는 국내기업인 제넥신에서 개발할 백신 생산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동과 화순의 지원센터는 정부 소유의 공적생산시설이지만 계약한 백신 생산 계획량이나 계약 단가 등에 대한 정보가 불투명할뿐만 아니라, 민간기업의 개발과 생산을 지원하는 목표 이외에 코로나19 백신 생산량 확대와 같은 공적 활용으로 전혀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송도에 소재한 생물산업기술실용화센터(KBCC)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 생산기술연구원이 소유한 공공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기관이다. 약 1,000억원의 공적재원을 통해 설립된 공적 생산시설로 2009년부터 민간기업 바이넥스의 위탁 경영 하에 운영되고 있다. 동물세포 설비(4,500L)와 미생물 설비(500L)를 보유하고 있으며, 작년 국내기업인 제넥신에서 개발할 백신 생산 계약과 러시아에서 개발한 스푸트니크V 원료의약품 생산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KBCC는 바이넥스에 관리운영권을 위탁하는 대신 중소기업 시설이용 쿼터제, 국내수탁 생산단가 상한제 등을 이행하도록 하는 ‘공공성’을 일부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생물산업기술실용화센터도 결국 수익의 90%가 민간기업에 귀속되며, ‘공공성’ 의무 역시 위탁기업의 편의와 비용 절감 목적에 기반하고 있다. 이외에도 ‘안동 백신산업 클러스터’에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이, ‘화순 바이오메디컬클러스터’에 전남생물의약연구원이 CMO시설을 가지고 있으나 두 곳 모두 공적 활용이라기 보다는 ‘바이오의약품/백신산업 육성,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본래 공적 재원을 통해 의약품 생산시설을 구축하고 관리하는 사업은 의약품의 공공성 확보를 목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공적 생산시설이 코로나19 팬데믹에서는 글로벌 백신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표로 사용되려면 공적 통제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정부의 글로벌 백신 허브 구축과 국내 공적 생산시설의 활용은 글로벌 공공재 실현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과 반하는, 제약사의 독점권을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이용되고 있다. 해외에서의 백신 접종 불평등과 변이바이러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외 시민사회는 지식을 공유하는 길만이 감염병 종식을 앞당길 방법이라 주장하고 있으며, 최근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 고소득 국가들도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지적재산권 면제’에 지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코로나19 빠른 종식이 절실한 정부는 공적생산시설을 최대한 활용하여 백신의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공적 생산시설이 제약사와 맺은 계약과 관련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적 생산시설을 통해 생산된 백신이 공공재로 기능할 수 있는 제도적 통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한국뿐만 아니라 생산역량을 가진 모든 국가와 시설에서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필수적인 지적재산권의 유예를 지지하고 공평하게 백신이 접종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노력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2021년 7월 7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첨부) [PHM 브리프] 공적 생산시설에서 생산된 코로나19 백신, 이용할 권리는 누가 가져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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